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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이야기 (1)

첫 번째 글쓰기는 가볍게 성인이 되기 전 기억에 대해 쓰고자 한다.

책 읽는 소년

나는 중학교 때까지 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사실 책 자체가 좋았던 것 보다 책 읽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 좋았다. 뭔가 유식해보인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남들 보다 무언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질 수 있는 편한 방법이 책 읽기 였다.

나는 자기 계발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다. 특히 좋아 했던 책이 마시멜로 이야기 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걸 왜 좋아했나 싶다.

판타지 소설을 엄청 좋아하진 않았는데 전민희 작가님의 룬의 아이들세월의 돌을 정말 재밌게 읽었다. 웃기게도 판타지 소설에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정말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내용도 좋았지만 전민희 작가님의 표현이 참 좋았다.

이 외에도 셜록홈즈 시리즈도 다 읽었고, 역사와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다. 천문학과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다. 우주라는 것 자체가 그 당시에는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 같은 느낌이 있어서 뭔 소리인지 모르고 봐도 재밌었다.

제일 인상 깊었던 책 중 하나가 12살 소년이 쓴 우주 판타지 소설 빅뱅의 비밀open in new window이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스토리가 정말 탄탄했다. 어떻게 13살의 머릿속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까? 하며 감탄하고 봤다.

자의든 타의든 결국 책을 많이 읽었고, 다독상 같은 것도 몇 번 받았다. 도서부 활동도 열심히 했고, 그 과정에서 친해진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핸드폰을 몇 번 박살내기도 했고, 군대에 있을 때 홧김에 연락처를 초기화 하기도 하면서 유년시절 친구들과의 연락처가 다 사라졌다.

다들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무득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냥 살아가는게 참 바쁘다보니 금새 다시 잊어버린다.

각설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성적도 중상위 권이었던 내가, 뜬금없이 전문계 고등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니가? 왜? 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래도 나에겐 막연하게 프로그래머가가 되고 싶다 라는 목표가 있었다.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

나의 유년 시절은 평범하다면 평범했고, 어떻게 보면 참 다사다난 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서 이사도 많이 다녔고, 덕분에 동네 친구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6살 차이 나는 누나랑 떨어져 살기도 했고, 부모님의 다툼에 질려 누나가 18살의 나이로 2년 동안 가출했었다. 막연하게 사는 게 뭔가 힘든거구나 내 맘처럼 되는 게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보기 좋은 중년 부부가 된 우리 부모님도 어릴적 나에겐 이해할 수 없는 대상들이었다. 그냥 부모님도, 하나 뿐인 누나도 그 당시에는 말 그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나는 무척 소심했고, 겁도 많았고, 화도 많았고, 뭔가 스스로를 많이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자존감이 아예 없던 것이다. 형성도 되기 전에 밑바닥을 쳐버렸으니..

덕분에 뭔가 되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공부는 싫어 했기 때문에 굳이 부모님에게 학원을 보내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글을 쓰면서 생각난게 초등학교 1학년 때 컴퓨터 학원을 6개월 정도 다녔었다. 그냥 뜬금없이 아빠가 가서 타자연습이나 해보라면서 컴퓨터 학원에 보내주셨다.

학원에서 타자연습을 익혔고, 어느 정도 속도가 나자 한글97로 워드프로세서 실기 연습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500타가 나왔다며 기뻐하던게 생각난다. 2학년 때는 1000타가 나와서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다. 그렇게 타자연습이 익숙해지자 한글 문서 만드는 법을 배웠고,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린 나이에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가막히게 잘 다뤘었다. 덕분에 실기 시험만 보면 항상 1등을 했는데, 문제는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선 일단 필기시험부터 통과해야 했다. 그 당시에 필기 시험이 뭔지도 몰랐고 뭘 공부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자격증 시험은 아예 재꼈다. 아직 까지 재끼고 있음이 진행중이다.

그렇게 1년 정도 컴퓨터 학원을 다녔는데, 어느 순간 학원 선생님이 학원비가 거의 6개월 이상이 밀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부모님이 학원을 가라고 해도 그냥 가기 싫다며 배째라 식의 태도를 취했다.

결과적으로 그 당시에 부모님이 나를 컴퓨터 학원에 보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지 싶다. 결과만능주의

어쨌든 이러한 계기로 컴퓨터라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무엇보다 게임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많이 접했다.

그 당시에 꼬마들이 그렇듯 나 또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즐거웠고, 컴퓨터 게임이 재밌었고,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은 더더욱 재밌었다.

굉장히 많은 게임을 했지만, 인상 깊었던 게임만 나열해보자면 크레이지 아케이드 메이플 스토리 겟앰프드 건즈 등이 있다. 나는 성격이 좀 급해서 메이플 스토리 같은 RPG 게임은 길어야 두 달 정도 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 마다 나의 시간을 채워 주던 게임이 메이플 스토리였다.

일찍 자는 날에는 저절로 새벽에 눈이 떠져서 그 때 마다 부모님 몰래 새벽에 메이플 스토리를 했다. 그 때의 스릴과 긴장감을 다시 느끼는 날이 올까? 아마 불법적인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없겠지 싶다.

어쨌든 메이플 스토리 때문에 PRG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다.

그 다음으로 즐겨 했던 게임이 건즈 라는 TPS(3인칭) 총 게임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성격이 급했기 때문에 이 건즈라는 게임은 정말 나에게 딱 맞는 게임이었다. 속도감이 좋았고 화려한 기술들을 익히는 재미도 있었고, 친구들이랑 같이 했기 때문에 더더욱 재밌었다.

그런데 핵 때문에 망했다.... 빌어먹을 핵쟁이들.. 정말 어떤 방에 들어가도 핵을 쓰는 사람이 존재했고 덕분에 게임을 즐길래야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나도 이럴 꺼면 빨리 망해라 하는 심정으로 핵을 썼다. 그 당시에 건즈를 하면서 핵을 쓴 사람보다 안 쓴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그 만큼 구하기도 쉬웠고 핵 사용자에 대한 조치 자체가 없었다.

뜬근없는 핵에대한 고찰

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사실 프론트 엔드 개발자가 하는 일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프론트 엔드 개발자는 클라이언트 사이드를 다루는 작업을 한다.

핵을 만드는 과정도 이미 메모리상에 올라와 있는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작업이다. 즉, 클라이언트를 조작하는 작업이다.

그 다음으로 즐겨 했던 게임이 바로 겟앰프드 라는 격투 게임이었는데, 사실 이 게임 덕분에 지금 내가 개발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겟앰프드라는 게임 자체도 재밌었지만 싱글 겟앰프드라는 이름의 베타 버전 리소스가 온라인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메이플 스토리로 따지면 프리 메이플 이라고 해야할까? 게임의 클라이언트를 조작할 수 있는 형태의 리소스가 공개되어 있는 것이었다.

각설하고 내가 이 싱글 겟앰프드 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안타깝게도 집에서 인터넷이 안 되기 시작할 때 부터였다. 그 당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고, 인터넷 요금을 납부하지 않아서 한 2년 가까이 인터넷 없이 생활했었다. 대신 게임을 하고 싶거나 인터넷을 이용 하고 싶을 때는 피시방에 갔다.

겟앰프드라는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에 대해 찾아보다가 우연히 싱글 겟앰프드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는데, 신기했던 것이 직접 리소스를 수정하여 자기 만의 악세사리나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다.

루피의 밀짚모자
* 이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루피의 밀짚모자 라는 악세사리이다.

그리고 수정하는 방법에 대해 강의가 올라오는 네이버 카페도 존재했다. 그래서 정말 몇 개월 동안 싱글 겟앰프드 캐릭터나 악세사리를 만드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

이 때 Hex editor 라는 것을 이용했고, 소스 코드를 수정하는 게 아니라 아예 binary 파일을 수정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hex editor

지금은 내가 했던 일이 컴파일된 Binary 파일을 직접 수정하는 작업이라는걸 알고 있지만, 저 당시에는 그런 개념을 몰랐다. 그냥 hex editor라는 프로그램으로 파일을 열어서 숫자를 수정했더니 게임을 열었을 때 그게 반영 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금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을 이미 초딩 때 한 것이다.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기에 가능 했지만 어쨌든 몇 년간 에디터를 보는 것이 나의 유년시절 업이었다.

그렇게 3~4년 정도 싱글 겟앰프드 마스터 라는 카페에서 활동 했고, 여러가지 악세사리를 만들었고, 이 때 부터 막연하게 프로그래머 라는 직업을 목표로 했다.

공부라는걸 조금이라도 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경험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는 것 보단 뭔가 고등학교 때 조금 더 재밌고 특별한 일들이 하고 싶었다. 이런 분야에서 좋은 학교가 어디있나 찾아봤는데 선린인터넷고등학교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 등이 있었다.

문제는 두 학교 모두 성적이 어느정도 받춰줘야 원서를 쓸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까지 공부랑 담을 쌓고 살았다. 사실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뭐가 좋은지도 몰랐고, 공부가 그냥 재미 없었다.

그래도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해주는 이야기들은 항상 재밌었다. 수업은 열심히 들었고, 시험은 못봐도 이상하게 수행평가는 반에서 항상 1~2등 안에 들었다. 공부하는 것 자체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공부하는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행위(수행평가)는 좋았던 것 같다. 공부의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랄까?

막연하게 공부하기 보단, 공부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평균 이상의 성적이 되기 시작한건 좋아하던 학생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학생이 공부를 엄청 잘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성실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동경했던 것 같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랄까.

그렇게 그 친구와 같이 목표를 세우고(평균 점수 90점 넘기기 라던지) 공부를 시작했다. 뭔가 거창한건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수업시간에 수업 열심히 듣고, 평소에는 열심히, 매우 열심히, 격하게 놀았따.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은 시험기간이 되면 흔히들 말하는 벼락치기를 했다. 수업시간에 필기를 꽤 열심히 했기 때문에 시험 2주 전 부터 하루에 한 과목씩 공부하고 복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1학년 때는 평균 70점을 넘기면 시험 잘봤다고 좋아하던 내가, 2학년 때 앞서 언급한 그 친구와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85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고백이라는 것을 해본 적도 없었고, 좋아한다는 표현을 해본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 친구와는 이도 저도 아닌 사이가 되었다. 그래도 점점 공부하는 습관이 생기면서 중학교를 졸업 할 때 쯤엔 95점 정도가 되었다. 이 정도면 인생의 은인이 아닐까?

하지만 1학년 때 부터 꾸준하게 공부를 잘했던게 아니기 때문에 최종 내신은 200점 만점에 180점 정도였다.

그 당시에 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에 입학하려면 190점 정도는 되어야 했고, 나에겐 역부족이었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는 내신도 많이 보긴 하지만 내신 보다 프로그래밍 지식에 대해서 많이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프로그래밍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아예 없었다. 바이너리 파일을 수정했으면서 프로그래밍은 몰랐다는게 말이 되는가? 내가 바로 그랬다. 이게 바로 시작의 중요성!

어쨌든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도 원서를 쓸 수 없었고, 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에도 원서를 쓸 수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경기도 안산에 살았기 때문에 안산공업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이상하게 가족들이 결사 반대를 했다. 안산공고에 갔으면 조금 더 평탄했을지도..

그러다가 뜬금없이 누나가 수원에 있는 삼일공업고등학교 라는 곳을 소개해줬고 어떻게든 돼라 하는 심정으로 삼일공업고등학교 멀티미디어과에 원서를 썼다. 그런데 정말 웃기게도 과 수석으로 입학하였다.

공부와 담쌓고 지내던 내가 과 수석이라니! 뭔가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고 나도 노력이라는걸 하면 뭐라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게임에 제대로 빠졌다.

고등학교 시절은 힘들었지만 재밌었다.제일 힘들었던 것은 바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통학 시간이었다.

2010년 1월에 처음으로 학교를 방문했는데, 하필 눈이 무척 많이 온 날이었다. 눈이 10cm 정도 쌓인 상태에서 안산에서 수원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으니 첫 등교 부터 험난했다. 쓰고 보니 이게 벌써 10년 전이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삼일공업고등학교

위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삼일공업고등학교는 수원 화성 안에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삼일상업고등학교 삼일중학교 매향중학교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 연무초등학교 가 있었다. 이렇게 한 곳에 6개의 학교가 뭉쳐 있는 것은 처음 봐서 신기했다.

무엇보다 학교의 위치가 문화제 안에 있었기 때문에 등교를 할 때 마다 일본인/중국인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첫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학교를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전문계 고등학교에는 기능반 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학교 수업에서 배우지 않는 것을 따로 공부하고 대회를 준비하는 동아리라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걸 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넌 공부나 해라 하며 바로 퇴짜를 맞았다. 그래서 진짜 공부만 했다. 마음에 드는 동아리도 없었고, 그냥 저냥 친구들이랑 야자도 하고 보충수업도 들으면서 공부하는게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학교 시험이 무척 쉬웠기 때문에, 중학교 때 처럼 공부하지 않아도 손쉽게 1~2등은 할 수 있었다. 시험 문제도 거의 알려주다 싶이 했고, 뭐랄까.. 그냥 말 그대로 쉬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과를 생각해보면

  • 새벽 5시 30분 쯤에 눈을 뜨고
  • 씻고, 밥먹고, 6시 쯤에 버스를 타고
  • 8시 이전에 학교에 도착하고,
    • 웃긴게 6시에 버스를 타면 7시 10 ~ 20분 사이에 도착하고
    • 6시 10 ~ 20분 사이에 버스를 타면 8시 쯤에 도착한다.
    • 그래서 가능하면 1분이라도 빨리 버스를 타려고 뛰어다녔다.
  • 1교시 시작 전까지 한자와 영어 공부를 학고
  • 수업을 들었다.
    • 쓰다보니 생각난건데 우리 학교는 점심시간이 12시 50분 부터였다.
    • 그런데 특이하게 4교시는 선생님들이 10~20분 정도 빨리 끝내주셨는데 이게 이 학교의 문화인가 싶었다.
  • 5교시는 1시 50분 시작했고,
  •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을 듣고 야자를 9시~10시까지 하고
  • 집에 가면 11시 ~ 12시가 되고
  • 1시 까지 가볍게 게임을 하다가 잤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부터 입대하기 전 까지 약 6년 ~ 7년 정도 버블파이터 라는 게임을 했다. 웃기지만 나는 사회성을 버블파이터를 통해서 배웠다.

버블파이터

버블파이터크레이지 아케이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물총 싸움을 하는 TPS 게임이다. 게임의 기본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물총을 통해 적의 피를 전부 깎으면 버블 상태가 된다.
  • 팀원이 버블 상태일 때 터치하면 다시 살아난다.
  • 버블이 5번 되면 저절로 죽는다.
  • 적이 버블 상태일 때 다가가서 터트려야 완전히 죽는다.

즉, 일반 FPS처럼 피를 깎아서 죽이는게 아니라 다가가서 터트리기 까지 해야 죽는 게임인 것이다. 말 그대로 크레이지 아케이드에 총 게임을 섞어 놓은 컨셉이다.

초등학교 때 건즈라는 게임을 제일 재밌게 했는데 버블파이터가 딱 건즈 느낌이 났다.

커뮤니티 활동도 꽤 열심히 했고, 게임 자체도 열심히 했다. 지금의 오버워치로 따지면 경쟁전 랭킹 Top 10 안에 들었었다.

처음으로 하나의 게임을 1년이상 했다. 게임에 과도한 현질 유도만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즐겁게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게임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게임을 할 때 마다 아는 사람들이 보이게 된다. 그렇게 랜선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는데, 자연스럽게 모든 말과 행동을 신경써야 했고, 게임을 통해서 친해진 친구들과 실제로 만나서 노는 일이 많았다.

각설하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집에 오면 가볍게 1 ~ 2시간 정도 버블파이터를 했고, 주말만 되면 정말 하루 종일 버블파이터를 했다. 게임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래도 가슴 한 켠에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 라는 목표가 자리 잡고 있었고, 무언가 내가 허송 세월을 보낼 때 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는 이 이야기 이후부터 시작된다. 밤이 깊어서 더 이상 길게 쓸 자신이 없으므로, 내일의 나에게 바톤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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