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일
나는 성인이 된 후 현 회사에 입사하기 직전까지 항상 교육 활동을 해왔고, 선배님, 선생님, 멘토님, 코치님, 강사님 등 여러 호칭으로 불렸었다.
나는 학습보다 교육을 좋아했고, 직무성향 테스트를 하면 항상 엔지니어보다 교육자가 더 적합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스스로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르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
개발을 좋아하는 것과 개발을 잘하는 게 다른 것처럼. 일을 좋아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게 다른 것처럼.
물론 대부분 좋아하면 잘하기도 한다. 그만큼 시간을 많이 투자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교육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교육을 잘하는 사람일까?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다.
나는 지식을 잘 전달하는 사람인가?
교육 활동을 하다 보면 사람마다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무척 다양하고, 각각의 방법에 따라 교육을 받는 사람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깊이도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는 지식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교육에 대한 경험이 많은 것과 교육을 잘하는 것은 다르다.
그렇지만 나는 “훈련”은 잘 시키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이것도 착각일 수 있다.
애초에 재능 있는 사람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나 쫌 하네?”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인풋을 넣으면 아웃풋이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을 내가 가르쳤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가르쳐왔을까?
문득 교육자를 부르는 각각의 호칭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서 GPT에게 물어봤다.
교육자를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성장에 개입하는 역할로 보면 꽤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고 한다.
- Teacher / Instructor — 교사·강사: 지식과 기술을 직접 가르치는 사람
- Tutor — 튜터: 개인의 수준에 맞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사람
- Mentor — 멘토: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방향과 조언을 주는 사람
- Coach — 코치: 답을 직접 주기보다 질문과 피드백으로 스스로 성장하게 만드는 사람
- Facilitator — 퍼실리테이터: 학습이나 토론이 잘 일어나도록 환경과 과정을 설계하는 사람
- Trainer — 트레이너: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특정 능력을 숙련시키는 사람
- Role Model — 롤모델: 행동과 태도 자체로 학습의 기준을 보여주는 사람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의도치 않게 이 각각의 단계를 밟아왔던 것 같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겠지?
- 일단 지식을 전달해보고 (티칭)
- 성장의 방향을 알려주고 (멘토링)
- 성장할 수 있도록 직접적인 도움이나 조언을 주고 (코칭)
-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장치에 대해 고민하고 구성해주고 (퍼실리테이팅)
- 반복 훈련을 시켜주기도 하고. (트레이닝)
- “잘했어. 다시 해보자.”
- “이번에는 더 빠르게 해보자.”
- 부끄럽지만 누군가에게 롤모델이 되기도 하고
이걸 교육의 전체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교육을 하면서 점점 역할을 확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는 사람이었다면, 점점 그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 자체에 개입하는 사람이 되어간 것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너무 다르다
그래서 개발도 그렇지만, 교육도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참 어려운 영역이다.
지식의 발산도 무척 중요하지만, 지식을 수신하는 사람의 상태도 고려해야 한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행동을 트리거하고 지속시키기 위한 인풋의 형태나 방향도 각기 다르다.
게다가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라면 더 어렵다.
왕초보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초보나 중수 혹은 능숙한 숙련자가 지식 전달의 대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은 정말 제각각이다.
- 누군가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누군가는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는다.
- 누군가는 이해하지 않아도 실행할 수 있고, 누군가는 이해를 해야 실행할 수 있다.
- 누군가는 계획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실행이 필요하다.
- 실행이 우선되다 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돈이나 시간 등 불필요한 비용을 사용하게 된다.
- 계획이 우선되다 보면 피드백이 늦어지고, 아예 실행을 못 하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 누군가는 자존심을 건드려야 하고, 누군가는 공감이 필요하다.
- 누군가는 수동적이고, 누군가는 능동적이다.
- 수동적이라면 대체로 시키는 건 어떻게든 한다.
- 능동적이라면 대체로 하고 싶어야 한다.
그래서 참 많은 것들이 상충한다.
누군가에게 효과적이었던 교육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 있고, 심지어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교육에는 항상 옳은 방법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방법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교육의 시작은 지식이지만
그리고 이건 꼭 교육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일터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이다. 일에는 교육이 수반된다.
새로운 동료가 합류했을 때도 그렇고, 리더 혹은 매니저가 되어 동료들을 이끌어가거나 성장시켜야 할 때도 그렇다.
처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온다.
- 왜 이해하지 못하는지 봐야 하고
- 왜 행동하지 않는지 봐야 하고
-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움직이는지 봐야 하고
- 때로는 직접 알려주는 대신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하고
- 때로는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만들어줘야 하고
그래서 교육의 시작은 지식이지만,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나와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그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라는 시스템
각각의 소프트웨어마다 적합한 아키텍처가 존재한다.
똑같은 구조가 모든 소프트웨어에 적합하지는 않다. 요구사항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제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사람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고,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고, 움직이는 이유가 다르고, 성장하는 방법도 다르다.
그 시스템을 이해하고, 연결시키고, 확장시키고, 성능을 높이는 것.
어쩌면 그게 교육자 혹은 리더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